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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과 절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니스커트
    인생 교훈 명언 2009. 5. 1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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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만큼 많은 것을 가진 재벌 그룹 회장의 자살과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는 사람의 웃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

    ....

    몇년전 일이다.

    경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한 젊은 여성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전복된 화물트럭에 깔렸다.

    처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의 상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찌그러진 차체에 짓눌려 무릎 위까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져 있었고, 그녀의 복부는 또 다른 외상으로 인해 소장과 대장이 여섯군데나 파열되어 있었다. 처음 응급실에서 환자를 대하는 순간, "생명을 구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혈압은 80/40 맥박은 120회. 호흡 수 100 회..

    대개 이런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서 두세시간이 흐르면 콩팥이 망가져서 신부전이 생기고, 소변량이 감소하면서 대사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아울러 면역기능의 악화로 외상부위의 회복이 어렵게 된다, 아니 외상부위는 둘째치고 일단 신속히 출혈부위를 지혈하고, 수액과 혈액을 빠른 속도로 공급해야 그나마 우선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그 큰 사고를 당하면서도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다.

    보통 사고가 났을 때, 병원에서 처치를 하는 순서는 A.B.C.D. ( air way , bleeding, circulation, drug ) 순서다 , 즉 제일 먼저 호흡을 확보하고 두번째로 지혈을 시키고, 세번째로 혈압을 올리고, 네번재로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을 하는 순서는 가슴- 머리- 배 - 팔, 다리의 순서다.

    예를들어 뇌출혈과 폐 기흉이 동반되면 폐기흉을 먼저 수술하고, 뇌를 수술하는 것이고, 뇌출혈과 장파열이 동반되면 뇌수술을 먼저하는 것이다, 물론 장 파열과 동시에 장 출혈이나 기타 복강내 출혈이 있으면 배를 먼저 수술한다,

    어쨌거나 어떤 경우에도 팔다리는 생명을 구하는 응급 수술에서는 가장 후순위에 밀린다.

    ............

    ...

    그러나 인주씨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오른쪽 다리가 압착손상으로 완전히 짓눌려 있어서 정상적인 지혈이 불가능했고. 근육이나 혈관, 기타 인대와 대퇴골의 손상이 워낙 심각해서 만약 수술이 늦어 질 경우에는 심각한 합병증이 초래될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출혈성 쇼크 상태를 개선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의사가 20대 후반의 여성의 다리를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함부로 절단을 하겠는가.

    그러나 차량이 전파되면서 환자만 후송한 탓에 신원 확인이 늦어지고, 수술 동의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환자는 쇼크상태였고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없었다,

    시간을 끌면 출혈은 지속되고, 가뜩이나 현재로서도 회생을 장담할 수 없는데 언제까지나 한쪽으로는 출혈을 하고 한쪽으로는 수혈을 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복부 시티 촬영상 복부의 출혈은 보이지 않았지만, 장파열이 확실한 상황에서 수술 시간이 늦어 진다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자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응급실에서 정형외과와 우리과 팀이 다같이 난감해하면서 선뜻 먼저 수술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전체 의료진이 연대 서명하고 수술을 감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환자의 환부를 곳곳을 돌아가며 상세히 사진을 찍고, 간호사와 양과의 스텝 네명이 병력기록지에 응급수술과 우측 하지 절단술, 아울러 개복수술에 대한 필요성을 적은 다음, 전원이 비장하게 사인을 했다.

    얼른 생각하면 당연한 일 같지만, 나는 그때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을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일 열가지 중에 하나로 꼽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permission 없는 수술은 자칫하다간 엄청난 소송의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

    ..

    우여곡절끝에 인주씨는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외과의사다, 그리고 국가기관에서 의뢰하는 공식 검안 및 부검의 이기도하고, 법의학 자문의 이기도 하다.

    이말은 내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이바닥에서는 볼 것 못볼 것을 다 봤다는 말이다.( 이일은 서로 안하려는 일이라 이일을 맡는다는 것은 "능력이 있다"가 아니라, "오지랍이 넓다"와 같은 말이다 )

    그런데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술이 바로 amputation 이다.

    의사란, 그것도 외과의사란 병으로 망가지거나, 기능을 잃은 기관이나 장기를 복원하고, 정상으로 돌려주는 건설자이지, 파괴자가 아니다.

    그런데 절단 수술은 파괴적 수술이다. 기능을 보존해야 할 사람의 몸을 파괴해서 제자리에 있어야 할 기관을 그자리에서 제거하는 수술이다, 그래서 나는 절단 수술을 가장 꺼리고, 그것은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떤 외과의사도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것도 여성이나 어린아이의 경우라면 그야말로 할 짓이 아니다,

    그날 인주씨의 다리가 절단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형외과에서 절단 수술이 끝나는대로 바로 이어서 개복수술을 하기로 하고, 수술 대기실에서 정형외과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있으면 내가 수술할 환자의 다리가 절단되는 상황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목위로 쳐진 마취가 스크린 뒤쪽에서 젊은 여성의 가늘고 고운 다리가 골반 아래쪽에서 짤려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메스가 부딪히는 소리, 켈리와 모스키토가 혈관들을 결찰하면서 일으키는 금속성 마찰음, 메스가 근막을 절개하는 소리, 그리고 대퇴골을 절단하는 전기 saw 의 소름돋는 소리가 수술방을 가득채우더니, 불과 30분만에 한 여인의 다리가 짤려나갔다.

    그리고 30분, 정형외과 스텝이 절단된 다리를 남은 피부로 덮어 쒸우고는, 위쪽에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 수고해..!!" 한 마디를 남기고 수술방을 나갔다.

    이런 수술이 진행될 때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대개 의사들이나 수술팀들도 이렇게 마음의 부담이 지워지는 수술들은 얼른 끝내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지는 것이다,

    ............

    ...

    복부수술은 쉽게 진행되었다.

    다행히 소장이 몇군에 파열되었지만, 장간막의 손상이 심하지 않았고, 응급실에서 찍은 사진에 free gas 가 많이보여 대장 파열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다행히 대장은 문제가 없었다, 만약 대장이 파열되었다면 생명을 담보 하기가 어려웠겠지만, 소장의 일부를 짤라내고 이어 붙인 다음, 식염수 20리터로 복강내를 세척하고 쉽게 배를 닫을 수 있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의 바이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다리에서 나는 출혈이 멈추었고, 복강내로 적지않은 양의 출혈도 이제 지혈이 되었다, 그리고 내원해서 지금까지 10파인트 이상 수혈을 받은 때문인지, 환자의 피 색깔도 비교적 선명했고, 수술칼이 지나간 자리로 적당하게 선홍색 피가 흘러나왔다,

    장의 색깔이나, 피부의 온도까지 이만하면 환자가 쇼크상태를 벗어난게 틀림이 없었다.

    천만다행이었지만, 우리는 수술을 끝내고 장갑을 벗으면서 고민에 사로잡혔다,

    휴게실에 나가니 정형외과 스텝이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을까? 퍼미션도 없이 앰퓨테이션까지 했으니, 나중에 이거 멱살잡이 당하는거 아냐?" 정형외과 스텝의 걱정도 일리는 있었다. 비록 내가 같이 동의서를 작성하고, 불가피한 상황이니 절단을 하라고 주도적으로 부추기긴 했지만, 절단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였으니 말이다.

    마치 학창시절에 시위를 주도하던 친구는 뒤로 빠지고, 그저 그자리에 묵묵히 뛰어 들었던 친구들이 제일먼저 굴비두름이 된 것처럼 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도리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환자는 살았고, 일은 이미 저질러진 것이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회복실에서 이미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을 때는 이미 거의 의식이 회복되었다.

    행운이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전파되고 다리가 압착손상을 입고, 장 파열이 된 환자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의사입장에서는 행운이었지만, 당사자인 20대 미혼여성이 어느순간 자신의 귀중한 다리가 없어져 버렸음을 알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

    ...

    우리는 긴장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다음, 그때서야 도착한 보호자를 상대로 나와 정형외과 스텝은 릴레이로 길고도 신중한 설명을 해야했다.

    다행히 환자 보호자는 상황을 납득했다,

    우리가 수술실에서 자칫하면 슈가 걸릴 가능성이 있으니, 수술 전후의 정황을 잘 기록하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첨부해서 미리 자료를 만들어 두자고 했던 작은 모의(?)들은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오히려 보호자들은 동의없이 수술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사의를 표시했다,

    특히 그녀의 약혼자는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로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

    ...

    그러나 문제는 환자였다.

    환자는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분 이었다.

    그녀는 나이 27살에 이미 자신의 일에서 상당부분의 성취를 이루었고, 자신이 근무하는 외국계 은행에서는 이미 업무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미모의 젊은 커리어 우먼이었으며, 다음달에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해외유학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앞서나가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만큼이나 절망도 컸다.

    그녀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동의없이 자신의 다리를 절단한 우리를 향해 끊임없는 원망을 쏟아냈고, 교통사고를 일으킨 상대방 운전자를 저주했으며, 자신의 처지를 심각하게 비관했다. 아울러 한동안 치료까지 완강하게 거부해서 의료진이 속을 엄청나게 태우기도 했다.

    사실 세상에 어느 누구가 그 사실을 받아 들일수 있겠는가,,

    평일 낮 고속도로를 그것도 모든 규칙을 준수하며 안전하게 운전하던 자기에게 난데없이 중앙선을 넘은 트럭이 돌진하고,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배에는 30 센티 길이의 수술자국이 나있고, 옆구리에는 4개나 되는 드레인 호스가 끼워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소중한 다리가 한쪽이 사라져 버렸을 때..

    과연 어느 누구가 그 상황을 운명이라고 순응할 수 있을까...?

    ...........

    ..

    그녀는 무려 한달간을 팬텀 현상에 시달렸다,

    사람에게 바디이미지란 무서운 것이다,

    사람은 뇌의 기억 단위안에 스스로의 바디이미지를 치밀하게 저장해 있다,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몸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게 되면, 뇌는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경우도 자신의 오른쪽 다리는 분명히 27년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킬 때, 자리에서 일어 설 때, 걸음을 걸으려고 할 때, 그녀의 뇌는 예전의 습관처럼 그 다리의 근육에게 자신의 몸을 지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또 그녀의 뇌는 지난 27년간 그랬듯이, 걸음을 걸을 때 왼 다리를 디딘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오른다리를 교대로 디디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녀의 몸은 그 명령에 따라 저절로 왼다리에서 오른다리로 중심을 이동하지만, 그 결과로 그녀는 매번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뿐 아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분명히 그 다리는 짤려 나가고 없는데, 그녀는 밤이면 짓눌려 으깨어진 오른쪽 다리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친다. 그녀의 뇌가 27년동안 당연히 그렇게 기억하는 바디이미지는 분명히 두다리가 멀쩡히 존재하는 것이고, 다만 한쪽 다리가 무엇엔가에 짓눌려 있는 것 뿐인 것이다.

    즉 그녀의 뇌는 단지 그녀의 다리가 짓눌려진 마지막 상황..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밤을 없어진 다리가 짓이겨지는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울부짖었고, 그때마다 고강도의 진통제를 찾았다, 그녀는 새로운 바디이미지가 생겨날 때까지, 거의 몇달간을 고단위 마약성 진통제를 맞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팬텀현상 (유령현상) 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상당기간 이런 팬텀현상에 시달렸다.

    아울러 정신적 고통의 크기만큼이나 우울증의 강도도 깊어갔다.

    ...........

    ..

    한달이 지나자 정형외과에서도 더 이상 치료를 할 필요가 없었고, 나도 그녀에게 더이상 치료를 해 줄 것이 없었다.

    쉽게 말해서 그녀는 의학적으로 완치 상태에 이른 것이다. 비록 한쪽 다리가 사라진 상태지만, 또 본인으로서는 죽어도 받아 들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의사로서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는 것이다.

    그녀는 다행히 정신과적 치료와 약혼자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우울증세는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얼굴에 여전히 드리워져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감출 수 없었다.

    그녀가 퇴원하던 날, 목발을 짚은 채 약혼자와 함께 내방에 들렀다. BK 도 아니고 AK 를 한 그녀의 다리는 바지속에 숨겨지지 않았다.( below knee BK 라면 의족을 대고 걸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above knee AK 는 그렇게도 할 수가 없다 )

    그녀의 길고 우아한 왼쪽 다리는 그녀의 긴 바지단을 지나 왼쪽 종아리와 발목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지만, 그녀의 짤려나간 오른쪽 다리 아래쪽으로는 마치 신장개업식에 쓰이는 공기인형의 다리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애처럽게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외래에서 그녀의 오른쪽 바짓단을 매듭으로 한번 묶어주면서 짐짓 태연하게 "원래 반대쪽 바짓단은 이렇게 동여매고 다녀야지 아니면 걸리적 거려서 걷다가 넘어져요,," 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바짓단을 묶어 주는 동안 약혼자와 부모님에게 어깨를 기댄 채. 알 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

    ...

    그녀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내가 가장 크게 걱정했던 부분은 엉뚱하게도 약혼자와의 관계다.

    그녀의 다리 하나가 사라진 상황을 두사람의 애정이 과연 무난히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설령 그녀의 애인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자존심 강해 보이는 그녀가 그것을 수용 할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이미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그녀에게 좋은 동반자가 곁에 남아주기를 바랬다.

    나는 인주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의 부모님보다 오히려 애인을 진료실로 자주 불러서 그녀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재활에 대한 조언이나, 장 파열 이후의 유착관리. 아울러 절단 환자들의 심리상태나 자칫하면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순간적으로 자해를 할 우울증의 가능성등을 얘기해 주었고, 그는 진지하게 내말에 귀를 귀울였다,

    그것은 두사람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내 나름의 심모원려였다.

    그러나, 그녀와 그의 관계는 나와같은 오버맨이 잔꾀를 부려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정도로 간단한 관계는 아니었다.

    .............

    ....

    가끔 1.2, 주에 한번 외래로 들리는 그녀의 얼굴에 차츰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젠 목발도 제법 잘 사용하고, 꽤 긴시간 동안 혼자 목발을 짚고 서있을 만큼 팔의 힘도 길러졌다.

    그녀는 퇴원후 직장을 사직하고 다른 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비록 그곳이 외국계 회사이고 그녀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우리사회에서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자에게 열어줄 수 있는 이해의 한계란 것이 고작 그 정도인 모양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한 것인지, 스스로 그만둔 것인지, 또 새로 얻는 직장은 어디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얼마던지 난관을 당당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적당한 처신을 선택한 것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것보다 더 걱정은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그녀의 애인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러고보니 최근 너댓번동안 한번도 병원에 같이 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직장을 그만둔 것과 같은 사유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웠지만 차마 그녀에게 그것을 질문할 수는 없었다,

    .............

    ....

    두어달의 시간이 흘러 이제 더이상의 외래 통원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던 문제가 있으면 다시 찾으라는 말을 인사로 그녀와 마지막 악수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서너달이 흐른 어느날. 인주씨가 다시 외래를 찾았다.

    이번에는 그녀의 곁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애인이 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운 손에는 하얀색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청첩장이었다.

    다음달에 두사람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가슴벅찬 청첩장이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두사람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 바쁘신 선생님들 꼭 오시라고 드리는건 아니고요, 왠지 제가 결혼 한다는 걸 선생님들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그런 그녀의 얼굴로 햇살같은 웃음이 지나갔다.

    그녀의 새로 얻은 직장이 바로 두사람의 가정이었던 것이다.

    ..........

    ...

    그런데 나는 바로 그날 일생에 경험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이제 곧 결혼 할 두사람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청첩장을 들고 서 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덧대어, 마치 어느 동화에서처럼, 혹은 어느 봄날의 꿈속처럼 참으로 소중하고 가슴벅찬 아름다운 광경을 그들이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미니스커트" 였다.

    그녀는 무릎 바로 위까지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태가 돋보이는 고운 왼쪽다리가 스커트 아래에서 길게 뻗어 땅을 디디고 있었지만, 사라진 오른쪽 다리는 당연히 있어야 할 그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사라진 오른쪽 다리가 그 자리에 원래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 같은 눈부신 아름다움을 느꼈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아름다운 숙녀의 미니스커트,,

    나는 그것으로 그녀가 드디어 가혹한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당당하게 이긴 것이다.. 정말 세상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어 그녀의 한쪽 다리만큼 아름다운 감동을 줄것이며, 세상에 어떤 강인한 자가 있어 그녀의 승리보다 더 단단한 승리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

    인주씨의 미니스커트,,

    그것은 바로 자그만 시련앞에서 쉽게 나약해지고, 무력하게 무너지고마는 우리들에게 웅변보다 더 큰 교훈을 주는것이 아니겠는가...

    인주씨..

    " 두분.. 언제나 변치않는 사랑으로,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출처 : 시골의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donodonsu)
    희망과 절망.. 그 두단어의 차이는 상황의 차이일까? 인식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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